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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問大答 빚...그 5천년의 생얼(3): 종교는 빚에 관해 뭐라고 말하고 있나
등록일 : 2015-10-03 04:20



빚-돈...종교는 그에 관해 뭐라고 말하고 있나. 


어이...

오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분명히 또, 밝힐 일이 하나 있다. "오늘 하는 이야기는 내 얘기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종교에 관해서 어떠한 의견도 밝히지 않는다.  

학문에 관한 이야기, 금융에 관한 이야기, 철학에 관한 이야기...이런 이야기는 자주 한다.  내 의견도 자주 밝힌다. 

그 분야들 관해서는 뭘 좀 잘 못 이야기한다기로서니, 줘 맞는 일은 드물다.  싸움도 잘 안난다. 

쿨하게,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으니..껄껄껄 이러면서 성숙하게 넘어가기도 한다.  멋있다. 말해 폼나고, 관용스럽게 들어줘서 멋있다. 


그러나, 종교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모든 경우, 무슨 이야기를 해도 남는 일이 없다.
 
여차즉하면, 줘 맞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순교의 일상화를 각오하지 않고서야...

차라리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지하철 속에서 외치면, 사람들이 피하지 날 공격하지는 않는다.

엄격한 의미에서 그건 소통이 아니다. 오히려,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거다.

일상의 대화 속에 종교적 가치관을 대화 속에 반영하는 것...사실, 그게 '예수천국'을 외치는 것보다 몇 배 더 어려운 것이다.  앞으로 계속 볼 상대를 지근 거리에 심지어는 생활권내에 두고 하는 소통 행위라서 그렇다.  나의 일상이 걸려있고, 내가 속한 사회 속에서의 나의 평가가 걸려있다. 잘 못하면 약간 돈 놈으로 찍힌다. 사실, 그런 걸 약간 돈 놈이라고 한다. 

종교 문제에 관해서는 잘 못 이야기했다간, 항의 데모 정도야 참으면 되고, 참다가 정 기분나쁘면 나도 그 집 찾아 가서 나도 항의데모를 하면 되니, 뭐 전혀 걱정할 것도 없겠으나,  걱정스러운 것은 테러가 심심찮게 발생한다는 점. 

내가 아는 종교 학자들 중에 테러로 돌아가신 분이 2분...그 분들이 뭐 특별히 극단적인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다.  학문적으로 충분히 할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들.  혹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은 반대 의견을 학술적으로 표현하면 되는 그런 이야기들...그런데, 오히려, 반론은 전혀 없었다. 다만, 테러가 있었다. 그래서 그 분들이 돌아가셨는데...

그 신도들이 '성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건드려서 그럴거다.

거기까지! 너, 다른 것은 다 건들여도, 그건 건들지마...에서 바로 '거기' 그게 '성스러운 것'이다.  'Set Apart' 등으로 묘하게 설명할려고들 그러지만, 그건 뭔가 모르는 사람들 이야기. 거기까지! 너 다른 건 건들여도 그건 건들지마...에서 '거기'가 바로 성스러운 영역, 즉, 성역이다.  

그걸 건드리면, 눈알이 돌아가고 두껑이 열리고 곧장 연장을 들게 되는 바로 그것...그것이 성스러운 거다. 

모든 종교는 성스러운 것을 여럿 가지고 있다.  타부는 사실 성스러움의 마일드한 외연이다.  타부는 좀 건드려도 경고성 공포 발사 정도로 끝난다. 그러나, 성스러운 것은 그렇지 않다.  곧장 무재판 처형이 실시된다. 계엄하에 초병에게 독극물을 제공하여 군법재판에 처해지는 것보다 더 심한 범죄라서 그렇다.

한국의 욕설 중에 어머니와 관련한 욕이 많은 것이 한국은 지금도 모계전통이 아주 강한 사회이고, 어머니는 절대무비의 성스러운 존재로 남아있어서, 상대의 바로 가장 성스로운 부분을 외설적으로 공격하는 언어를 구사함으로써 상대에게 심리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려는 그 의도가 그런 식으로 어머니와 관련한 욕설로 표현되는 것이다.

어떤 종교던지 그에 관해서 이야기하다보면, 아무리 객관적으로 서술할려고 해도, 그 성스러운 것들과 여기 저기 필연적으로 접촉하게 된다.  그래서, 즉각 무한 폭력적 상황으로 치닫는다.

그래서, 모든 종교에 관해서는

1) 무조건적으로 칭찬하고 감탄하고 넘어가거나,
2) 아니면, 나를 따르는 신도를 규합해서, 내 세력을 충분히 구축하고 난 뒤 맘껏 이야기하거나,
3) 나처럼,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남의 이야기를 뜬금없는 형식으로 소개'해야 한다.

아니면 맞는다. 난 그게 싫은 거고...

맞아도 해야하는 그런 이야기...난 그런 것 할 줄 모른다. 소신은 소의 신장을 소신이라고 한다. 난 그런 것 없다. 내가 그럴 듯 하게 생각하여 뭘 한참 신나게 이야기하다가도, 맞을 것 같으면 즉시 의견을 바꾼다.  그 이상의 존경을 바라지도 않고, 바란다고 한들 줄 사람도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아니라) Graeber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하여간 많은 사람들이 스캔달리조 (앞에서 소개한 성경속의 단어. 실족) 당할 것이다. 

종교와 인생에 관해서 많은 사람들이 가져온 지금 까지의 기존 관념과 전혀 맞지않는 이야기를 몇 개 듣게 될 것이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도 아마 반 (아니, 거의 다) 정도 될 것이다.  종교를 가지신 분들은 굉장히 화를 내실 것이다. 그럴 적에, 위의 밑줄 친 부분을 반드시 기억해 주기 바란다.  귀하들의 적(敵)은 내가 아니라, Graeber이다. 난 단지 조심하자는 차원에서 소개하는 것 뿐...


종교...

현재, 상당히 세력을 떨치고 있는 종교들은 거의 모두, '돈'에 관해서 아주 많이 이야기한다.

거의 모두 '탐욕'에 관해서 경고한다.

불교만 빼고 (요건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고리 대금에 대해서 강력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자 여기서부터 이 친구의 문제있는 발언이 시작한다) 이 세상에 종교 집단들 만큼 '돈에 관해' 이토록 지독하고 집요하고 악착스럽게 탐욕스러운 집단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존재한다는 말인가? 

억수로 갖다바쳐도 전혀 고마와하는 것도 아니고,

어려울 때 일 수록 오히려 더 갖다 바쳐야한다고 가르친다,

안 갖다 바치면 온갖 나쁜 일이 다 생긴다는 저주를 통해 생뚱맞은 겁을 주고...

(내가 그 대표적인 예를 들어주마...대부분의 교회에 가면 미국대공황때 10일조 내는 사람은 직장을 잃지 않았다는 설교를 적어도 일년에 3-4회 듣게 된다.  한국의 IMF때...10일조 내던 사람들이 실직을 많이 했다. 그래도 예의 그 설교는 계속된다. 나는 목사님들이 약간 낮간지럽지 않으실까 궁금하다.  최소한, '10일조는 꼭 달러화로 환전해야 내야 실직 방지의 효과가 있다 한화로 내었기에 효과가 없었다'는 정도의 설명은 하셔야된다고 느끼는데...또, 목사님들 가운데, 자신이 실직하신 분들도 많다. 그리고 교회가 파산하여 건물이 넘어간 교회도 많다. 그럼 그 목사님들 그 교회들은 뭐냐? 십일조를 하시시지들 않았다는 건데...)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사람들을 칭찬하고...

갖다 바치고 망한 사람들을 적당히 묘한 방법으로 침묵시켜버린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많이 알고 있다. 큰 부잣집 할머니셨는데, 참 좋은 분이시고, 신앙심이 참 깊으셨다. 그 분이 헌금을 퍽퍽 하셔서, 교회에서는 정말 황제급 권사님으로 칭송을 누리셨는데, 노년에 들어가시면서 경제 사정이 어려워져버렸다. 교회에서 슬슬 앵기는 사람들도 생기고, 나중에는 목사님들도 그저 귀찮게 취급하였다...반면, 돈이 많았지만, 교묘하게 낼 때 낼 곳을 피하여 내지 않고, 여전히 돈이 많은 집안이 있다. 그분들은 아직도 교회에서 황제급 칭송과 존경을 누린다. 교회란 곳에서 대접을 받으려면, 실제로 '많이 내는 것' 이 아니라, '많이 낼 듯'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요새처럼, 인터넷에 방송에 전세계가 Ubiquitous 하게 알 만한 사람은 알 만한 일들을 다 아니 너무 알고 있는 마당에 뭔 선교?  복음...모르는 사람있냐?  근데, 뭘 또 전하냐?  복음을 순수히 전하는 것과 이미 알고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에게 반복학습/강제세뇌를 통해 쑤셔넣겠다는 것과의 차이? !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사람들이 이미 다 알고, 다 자기들이 알아서 이미 선택을 했구먼, 그래서, 선교할 것도 없구먼, 선교 헌금을 거두고 거두고 또 거둔다.  선교 헌금을 내면 축복받는다는거다. (안 내면 저주받는다는 소리가 아니겠냐?)  내가 보기엔 예수님에 관해선 기독교인들이 오히려 제일 모르는 것 같다. 그런데, 누가 누구에게 뭘 왜 어떻게 Why How 선교한다는 거냐...? 

많은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예수님은  끝이 3 번 정도 말린 파마를 하신 블론드 장발에 루즈한 (제자들 것 보다는 약간 긴) 가운을 입고 샌달을 끌고 다니시는 백인인데, 원수를 그저 그지없이 사랑하시며 원수를 위해서 눈물로써 기도하시는 그런 고상한 분이시다.  (원수를 사랑하시기 전에, 처음부터 사람들과 원수를 짓지 않는 것이 더 좋지 않았겠냐는 상식적인 의문이 발설되면, 여늬 기독교는 대 혼란에 빠지게 되겠다.)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헐리우드 영화들을 통해 만나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거다.  모세가 챨톤헤스톤과 같을 것이라는 것과 같이 이런 기독교인들의 예수님에 대한 정형적인 인상...정말 지우기 어렵다. Joan of Arc에서 모세의 부인이 Joan이라고 생각하는 기독교인이 미국에서는 70%가 넘으니 할 말은 없다. 

성경 속의 예수님은, 백인이 아닌 흑발의 수염 많은 중동인이고, 기분 나쁘시면, 상대에게 '야이 독사의 자식들아! (아마 히브리원어로는 쉐갸...쉐마와 같이 히브리어에 정기적으로 등장하는 단어), 야이 회칠한 무덤같은 쉐갸들아!  유황 불속에 튀겨 죽일 쉐갸들아! (한국에서는 유황대신 다른 액체가 튀김의 열전달매체로 동원되겠다)'라고 욕을 씨~원하게 지독한 갈릴리 사투리로 퍼부시는 성격 괄괄하신 지극히 남성적인 분이다.  적어도 21세기 한국의 대학나온 평균 교양인보다는 입이 건 화끈한 블루칼러 노동자 출신 카리스마 만빵의 걸진 이야기꾼이시다.  많은 문제를 길게 차분하게 (친절하게) 설명하시지 않고, 웩 하고 몇마디 화두식으로 던지시면서, 야단치는 식으로 면박을 주고 오늘 여기까지!라고 선을 긋는 분이시다. (그래서, 약 2천년이나 대대로 당대의 톱 대가리들이 평생 목을 걸고 해석을 해도 아직 잘 모르겠는 언행도 많으신 분...) 

소위 '복음서'라는 것이 이래 저래 안 읽는 사람들이야, 원수를 사랑하라는 교훈서/도덕서/윤리서라고 평생 착각하고 살겠지만, 사실 돈에 관한 이야기, 빚에 관한 이야기다. 

'복음'의 정의:  빚쟁이들에게 (새 왕조가 들어서니, 옛 왕조 치하에서 발생한 빚은)  안 갚아도 된다는 것을 전해주는 좋은 소식을 말한다. 

'구주'의 정의: Redeemer: 빚을 대신 갚아주는 사람을 말한다.  

복음서의 거의 90%가 빚과 돈에 관한 이야기다. 만 탈란트를 빚진 종과 작은 빚진 자...소작인과 농장주...결국, 빚 이야기다. 

주기도문도, '죄'라는 말로 묘하게 바꾸어 논점을 흐리지만, 원어로 보자면, 사실 '빚'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내게 빚진자의 채무를 해제하여 주듯, 당신도 내가 당신에게 진 빚을 탕감하여 주십시요...이게 원어에 가장 충실한 번역이다.  

새 왕조가 들어서면, 이전 왕조치하에 개인간에 발생한 빚을 탕감해 버리는 것이 중동의 왕조역사의 전통이다. 중국에서도 새 왕조가 들어서면서 이런 일을 가끔한다.  
 
주기도문은 새 왕조의 도래를 예고하면서, 옛 왕조에서 개인간에 발생한 빚을 서로 탕감하라는 것을 가르친다.  

그게 그런데, 쉽냐?  탕감받는 쪽이야 쉽다. 그러나, 탕감하는 쪽은 거의 불가능하게 어렵다. 

그래서, 말 장난을 하는 거다.  금전적인 빚이 아니라, 정신적인 죄/도덕적인 결점/영적인 부채를 의미하는 거야...이런 식으로 말이다. 

정신적? 개뿔...뭔 정신적? 뭔 영적?...그렇다면, 주기도문을  '다른 사람들이 경제적인 빚 말고, 영적으로 제게 진 고 것만을 내가 용서하여 주듯, 하느님도 나의 경제적인 빚말고, 영적인 고 죄만을 용서하여 주십시요'라고 치환시켜서 읽어보기 바란다. 전혀 뜻이 통하지 않게 되어있다. 엉터리 해석인 거다.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도문을 이런 식으로 왜곡시킨다. 그렇게 왜곡시키면서 또 매주 내리 줄창 외우면서도 불편해 하지도 않는다.  거기다, 거기에 곡조까지 붙여서 찬송가까지 만들어 부르는데야...제 정신 가진 사람은 졸도하실 지경이 될 것이나, 그랬다가는...

구원 구속과 용서...

기독교의 중심 핵심 교리다.

전부 일차적으론 돈에 관한 이야기다.  간단하다. 돈 머니 치엔 쁠라따 오카네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데, 그걸, 영적으로 승화시키느라고 무척들 노력하고 그게 뭐 진정한 기독교인 줄 안다. 영적으로 승화시키는 것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일차적인 것을 먼저 해결하고 영적으로 승화하셔야지 이 아자씨들아...소화하기 전에, 승화부터 하셔셔셔야. 

나는 그래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못 받았으리라 추측하는 거다. 

걍, 헛 신앙 생활하는거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은 아니고 거의 끝자락근처)까지 돈 이야기를 하는데,  그걸 억지로 피해서, 영적으로만 나가시니 신앙생활이 핀트가 어긋나고 스텝이 꼬이고 힘들기만 하는 거다.  그렇게 사는 것이 영적이고 폼이 날지는 몰라도 성경에 의한 기독교적인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이 아니라, 헐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기독교의 허상(영상)으로부터 배운 기독교라서 그렇다. 

기독교 신앙,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원래 '돈'에 관한 이야기다. 


죄인 (Debtor)...

세리 (빚 대신 받아주는 사람, 해결사들)...

구주가 죄인을 구원하는 (즉, 좋은 분이 빚을 대신 갚아주는...)  그런 것들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그런데, 그걸 이해 못해?  그건 당연히 기독교인으로서, 이미 빵점을 맞은거다...아무리 방언을 알랄라 거려도 아무리 선교사 생활을 수십년을 해도,  기독교의 핵심, 구주가 내 빚을 대신 갚아주었다는 그걸 이해 못 하고서야,  40일 금식하면서 왜쳐본들...그건 헛 신앙일 뿐이다. 
...

라는 주장을 Graeber는 펼치고 있는 바.  좀 더 설명하자면,

Graeber는 대부분의 종교가 사실은 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금 세력을 떨치고 있는 종교들의 발생이 사실은 화폐/빚/빚으로 인한 노예계급의 발생 그리고 그로 부터의 고통에 대한 사색을 통해 전 지구적으로 거의 동시대에 발생해서 그런 것이라고 설명한다. 

화폐 경제가 발생하고, 빚이란 것이 생겨나고, 그로부터, 노예 계급이 발생하고...사람들이 내가 쓴 저 번회의 글처럼, 도대체 세상이 왜 이런거냐는 고민을 하기 시작하고...거기에서 종교가 발생해서 그렇다고 Graeber는 주장한다.

사실, 그러고 보면, 대부분의 종교는 그래서 돈의 문제를 많이 다룬다. 

돈 때문에 발생해서, 돈에 관해 설명하는 정신 작업의 일종이 바로 종교라서 그렇다. 대강 신석기 시대에서 짧은 청동기시대를 통하고 철기시대로 들어가는 그 즈음에 전 세계의 큰 종교들이 거의 동시에 탄생한다.  바로 그 즈음, 화폐/빚/노예제도가 발생해서 그렇다.  종교는 돈으로 발생한 사태에 관해 사색을 한 결과 생긴 돈에 관한 이야기라는 거다.  흠...
 
어? 돈을 숭배하면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옳다.

돈을 숭배하라고 가르치는 종교는 거의 없다.  조폭 사무실들 '차카게 살지 말자'라고 써있는 곳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실제로는차카게 안 사니 조폭인 거고, 실제로 돈을 숭배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종교 속에는 있으니, Graeber는 종교에 관해서 그렇게 매몰차게 이야기하는 거다. 

예를 들자, 이런 경우에도 섹스를 하면 안되고, 저런 경우에도 섹스를 하면 안되고, 이런 여자와도 섹스를 하면 안되고, 저런 여자와도 섹스를 하면 안되고, 섹스를 하는 사람은 죽이고, 생각만해도 곤봉으로 치고...그런 이야기를 많이하는 종교가 사실은 섹스교다.  섹스교라는 종교가 있다면, 아마, 하나님과 섹스 둘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늘'섹스에 관하여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자 이 문장의 기능적 포인트는 '늘' 이다.  말라는 이야긴지, 하라는 이야긴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섹스 이야기를 늘 하는 거다. 섹스에 중독된 사람인거다. 섹스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인 거다. 위의 차카게 살자라는 말처럼 섹스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거다. 

섹스라는 것 자체에 아직 눈을 뜨지 않은 공간에는 섹스를 금하는 섹스교가 존재할 공간이 없다.  (하긴 요새는 워낙 어린 것들도 발랑까져서, 그런 공간이 참 줄어들었겠다) 

마찬가지다, 기독교도, 하나님과 메몬 (돈의 신) 가운데 선택하라고 윽박지른다.  기독교가 돈에 관한 종교라서 그렇다.  돈의 발생과 발생 싯점이 같아서 그리고 깊은 연관이 있어서 그렇다. 

태초에 천지를 만드신 그 싯점과, 돈이 발생한 싯점사이에는 수억년의 시간적 공간이 분명히 있었을 것인데, 그때에는 하나님이 경쟁자가 없다가, 돈이 발생하면서 갑자기 경쟁자가 생겼다...?  그건 아니잖냐?  종교 자체가 돈의 발생과 동 시대에 깊은 연관을 갖고있어서, 핵심 개념 자체에 원천적으로 돈이라는 주제가 녹아있는 거다.  

화폐가 발생하지 않는 원시적 사회에서, 그래서 메몬 신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그런 원시사회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가서 뭐라고 설교했는지 좀 궁금해 하실 독자들이 많이 계실 것이다.  인류학에는 그런 연구가 많다. 예외없다.  선교사들은 원주민들로 하여금 돈 맛을 알게해주고, 돈을 사랑하면 안된다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좀 웃기지만, 그게 사실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원래 섹스에 관심도 없는 아이들에게 허구헌날 기름진 것 멕이고 야동 디립다 틀어주어서 사춘기를 괴롭게 만들어 놓은 후 섹스하면 절대로 안된다고 가르치는 것과 뭐가 다르리...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겨우 청동기 시대 이후에서나 나오는 사람이 만든 화폐의 신인 메몬신과 경쟁을 하자고 하시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사실, 좀 웃기는 거다. 아마, 요새 신약이 쓰여졌으면, 하나님과 크레딧카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윽박 질렀을 것이고,  10년 정도 후에 신약에 쓰여진다면, 하나님과 Bitcoin과 둘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윽박질렀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다른 종교 비판하느라 바빠서 자기 종교에 관해서 잘 못 알아서 그런 오해가 발생하는 거다. 
 
빚, 용서, 화해, 구속(빚대신갚아주기)...등 자기 종교의 기본 핵심 컨셉에 관해 이렇게 많이 이렇게 심하게 철저하게 오해를 하는 케이스도 동서고금의 모든 종교의 역사 속에 드믈것이다. 기독교가 유대인의 손을 떠나, 원천적으로 품성이 야만적인 이교도들의 손에 들어가면서 처절한 병적인 왜곡화의 과정을 시작해서 그럴 것이다. 

대중을 바보로 만들어 처절한 착취를 하는 조직으로서의 교회...우리, 약간만 까놓고 이야기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 오케이...예수님 오케이...교회 노. 목사님 오노...쟌냐?  그런데, 그 네 가지 컨셉을 믹스하여 혼동시키고, 사제계급의 지위를 은근슬쩍 우선 확보하고 조금 있으면 하나님의 위치도 슈킹한 후 혼동당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구조...그게 문제의 핵심이쟌냐? 

거의 모든 종교는 Primordial Debt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원죄, 업보...라는 여러가지 표현이 존재하지만, 하여간, 인류학에서는 그런 모든 컨셉을 Primordial Debt라고 한다. 

이걸 갚아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사제 계급이다. 어떻게?  제사를 드려야한다는 거다.  그게 뭐지?  어, 그건 나같은 전문가 들만이 제대로 할 수 있는 복잡하고 위험한 행사야. 그러니 깝치다가 죽지말고, 제물을 내게 가져와...

이게 Primordial Debt/사제/제물/종교집단/착취/빚...의 구조적 핵심이다. 

...라고 Graeber는 주장한다. (난 이 구절을 이미 내 컴퓨터 속에 복사해놓았다. 그저 시시 때때로 Control +V키를 누르면 된다) 

그런데, 거기에다 대고, 예수라는 입걸고 성격 우락부락한 양반이 엄청 큰 목소리로 사제들의 나와바리에 와서, 판까지 엎어가면서 영업방해를 한다. 

'제사가 아니라 긍휼!'

이래 저래 네놈들이 하나님께 진 빚은 못 갚는다.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 되면 식구가 되니 그 빚을 갚을 필요가 없다. 널 불쌍해 하신다.  그러니, 너에게 못 갚을 빚을 진 넘들도...왠만하면, 불쌍하게 봐주자.  너무 심하게 신체포기각서의 이행을 촉구하거나, 딸을 해치거나하는 채권추심행위를 하고 그러지 말자...이게 기독교의 핵심이다.  반면, 빚진 자들도, '채권자들도 이래 저래 하나님 앞에서는 다 빚진자여...내가 요사이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가 있을 뿐이지 훤디멘탈은 콰드라플 에이여...'라고 자신있게 살라는 것이다. 

여기까지, 거기서 좀 더 가면, 성스러운 것을 건드리게 된다.  기독교에 관해서는 여기까지만 하자. (그래도, 하나만 맛뵈기로 애피타이저로 살짝만 건드리고 넘어가자.  마음에 준비가 되신 분들은 개인적으로 연락주시기 바란다. 극강 하드 코스도 버라이어티한 컨셉을 장착한 채로 준비되어있다. )

흔히들, 루터가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에 반발하여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으로 알고 있다. 

맞다.  그러나, 루터도 기댈 곳이 있어서 교황에게 대든다. 즉각 화형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게되는 그 무엇...

바로 면죄부 판매라는 희대의 금융공학을 가지고, 한정된 시장을 두고 교황청과 경쟁하던, 다른 면죄부 판매 군주들이 루터를 보호해주었기 때문에 루터가 자신있게 교황에게 대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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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교황청은 더 화가 난 것이고. 독일의 한 촌구석에서 별로 존재감도 없는 녀석이 신학적으로만  뭘 떠든들 뭐그렇게 화가 났겠냐?  그런데, 면죄부 판매시장의 경쟁들이 조직적으로 미는 넘이 문제를 일으킨 거다. 그러면 사안의 엄중성이 차원을 달리하게 되는거다...

포인트:  다 돈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하는 거여...라고 설명하면 이상하게 아구가 정말로 잘 맞는 사건이 많다는 거다.  특히 종교가 그렇다.

사실은 돈이 아니라 긍휼 (엘레오스, 헤시드)...그게 답이다.  (참고로, 엘레오스에서 이름을 딴 '엘레오틴'이란 제품이 아주 좋다는 소문이 있다.) 


불교로 이야기를 돌리자. 

'무진회사'라는 단어를 기억하시는 분이 계신가 모르겠다. 

일본에 가면 아직 그 명칭이 남아있다.  신용금고를 의미한다. 서민을 대상으로 상당히 높은 이자를 받는 금융업을 하는 회사를 의미한다. 일본에는 우리보다 불교의 흔적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는데, 예를 들어 캐논 사진기의 캐논도 '관음'의 일본발음 '카노온'에서 나온거다. 드래곤 볼이라는 대힛트 만화 속의 고쿠 (손오공의 오공...모든 것이 공이라는 것을 깨달음)에서 나온 것이다. 

'무진회사'의 '무진'은 '무진장'의 '무진'이다. '무진장'은 현대 한국어에서는 '디립다'의 비슷한 말로 씌이는데, 사실은 아주 심각한 의미를 가진 종교용어이다.  "Unexhaustible Treasure"를 의미한다. 

--잠깐 샜다가 다시 오자. 불교에 관해서 공부할려면, 영어서적을 통해서 공부하는 것이 훨씬 머리에 잘 들어올 적이 많다.  서양사람들이 불교를 접한 것은 비교적 근대라서, 그 사람들의 새로운 눈으로 정리를 새로 정리하여서 그 관점과 서술이 신선하다.  그리고, 우리도 근대 서양교육을 받아서, 관념자체가 서양적인 요소가 많은 바, 서양사람들이 영어로 정리해놓은 불교가 훨 이해하기가 쉬울 적이 왕왕있다. 단지, Mahayana같은 용어 뒤에 한자로 대승(大乘)이라고 붙여주면 좋으련만 그렇게까지 친절한 영어책은 없다. 그래서, 불교용어사전 앱을 만들어서, 읽을 적에 절로 뜨게 하면 참 좋을 것이라고 희망하여본다....다시 본론으로 

'무진'이라는 컨셉은 불교에만 발견되는 아주 독특한 컨셉이다. 

Primordial Debt, 즉, 업보는 억만겁에 걸쳐서 쌓인 것이다. 따라서, 내가 지금하는 임시적 행위로서 도저히 갚을 수는 없다. 자기 손가락을 태우는 행위, 심지어는 자신의 몸을 태우는 행위로도 Primordial Debt의 억만곱하기 일조경 곱하기 억만의 수경천조 자승분의 일도 갚질 못하는 거다. 대부분의 우리들의 행위는 오히려 업보를 더 쌓을 뿐이다.  

방법은 단 하나.  영원히 지속하는 그 무엇에 선한 도움을 주는 것이다. 

사찰에서 운영하는 서민들에게 고리로 돈을 꾸어주는 금융업, 즉, 무진회사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그래서, 거기에 투자금을 기부해주고, 거기에서 나오는 이자로 선행을 하면, 영원한 빚을 어느 정도 갚게 되는 것이다...왜냐면 영원히 지속될 회사에서 나오는 이익금은 영원히 나올 것이니 내가 기부한 돈으로부터의 선행도 영원할 것이다...

흠...로직이 컴팩하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넘의 돈을 슈킹할려면 적어도 이 정도의 구라는 준비해야한다.  그게 최소한의 성의요 최소한의 예의다. 

그저 바치라고 악악 거려봐야 사실은 더 움츠려든다.  가끔 보면, 십일조 안바친다고 화를 내는 목사님들도 계신다. 어디서는 제명한다고 겁을 주기 시작한다나...오죽들 급하셨으면...츠츠츠.  옆에다 0.9조만 바쳐도 회원자격이 유지된다는 교회를 차리면, 0.8조만 주어도 된다는 교회가 나오기 전까진 성업을 할 것이다.  답답한 일이다. 

우리나라 이씨조선의 탄생에 꼭 나오는 이야긴데, 고려조의 불교 사원이 경제적으로 요사이 한국의 재벌들의 지위를 차지하면서 발생한 모순 이야기가 꼭 나온다.  이씨조선이 배불정책을 썼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바로 이 무진회사들 때문에 그렇게 된거다. 

전세계의 은(銀)은 은본위제도를 시작한 중국으로 은이 중국으로 빨려가고, 중국물건이 필요한 유럽인들이  중국물건을 사기위해서 은이 필요했고 은이 많은 신세계로 진출하고 했던 것처럼, 전 세계의 금(金)은 인도의 사원으로 몰린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과 한국에서는 원래 통화로 사용되어야할 금속들이 녹여져서 사원에 종으로 불상으로 많이 사용되면서 디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무진회사가 받는 실질 이자는 더욱 높아진다. 그래서 결국 사원이 그 지역사회의 거의 모든 재산을 소유하게 된다...ㅋㅋㅋ)...

다 돈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하는 거여...라고 설명하면 이상하게 아구가 정말로 잘 맞는 사건이 많다는 거다.  특히 종교 관련 사건들은 대부분 그렇다.  왜냐, 원래 종교가 돈 때문에 발생한 돈적인 존재라서 그런거다. 

...라고 Graeber가 이야기 하고 있다. 


이슬람으로 이야기를 돌리자. 

여기서도 이슬람과 빚/돈의 관계에 관해 논하자면, 왠만한 상식인들이 펄쩍 뛸 일이 몇개 튀어나온다. 

첫째, 아담스미스의 시장 절대주의 그리고 가격 메카니즘 신봉이 원래 이슬람 컨셉이라는 것...시장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다는 것도 이슬람은 알라의 손이 작용한다고 진즉부터 가르쳤던 거란다.  그렇겠지. 원래 아라비아의 상인이라는 말이 있었지, 유럽의 상인이란 말은 수세기 뒤에나 겨우 출현한다. 

둘째, 원래 유럽에는 기사도 정신...이런 것이 없었다. 그런데,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면서 아랍에 쳐들어가보니, 어? 이 친구들 싸우는게 싸우는 상대가 봐도 너무 폼나는 거다.  그래서, 사실 자기들도 그런 사람이라고 어거지로 우기기 시작한다.  아서왕의 이야기란 것을 불란서 사람이 쓰는데, 거기에 기사도 정신등이 출현한다.  늘 긴창 싸움을 하고, 참피언이 되고, 미녀을 위해, 괴물과 싸우고...다 바로 그 소설에서 시작한 허구 로망이다.  그 허구성을 통박한 것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라는 작품이다.  중세사회를 풍자한 허구의 소설이 아니다.  돈키호테가 풍자가 아니라 리얼한 서술을 한것이고, 오히려, 기사도정신의 로망들은 전혀 사실성이 없는 허구였다.  우리가 주로 기사라고 생각하고있는 그 집단들은 주로 산에서는 산적질, 바다에서는 해적, 길에서는 길막고 행인에게 시비걸어 통행료 뜯기등 지리적 환경에 따라 업종의 변환을 민활하게 하고 있었던 것...그런데, 돈키호테가 소설에 나오는 기사 생활을 한 번 해보고자 했는데 발생하는 여러 우스꽝스러운 사건들을 서술한 것이다. 
 
 
 

셋째. 이슬람의 이상형인 인간은 젊어서 모험적인 비즈네스를 하여 거부가 되고 그래서 대저택을 지니고, 호사스러운 노년생활을 하는 상인이였다. 신드바드의 모험등...그 거부들의 젊은 시절의 모험담을 모은 것이란다.  물론, '1:15로 연장든 넘들과 싸우는데, 퍽 아구를 돌리니, 뒤에서 이단옆차기가 들어오는 거야, 그래서, 잠깐 피했더니 총을 쏘는데, 그걸 피해서, 수도를 날렸더니, 퍽 쓰러지는 걸, 5미터 뛰어오르며 세바퀴를 돌아서 일곱번째 넘을 연환축으로 (내가 태권도도 하지만 십팔기 쿵푸를 좀 하거든...) 급소를 가볍게 공격하고 가볍게 착지했지...'식의 약간의 과장이 애교삼아 가미가 된 것은 당연...재미있게 듣고 집에가서 여과해서 기억하면 되는 거지 뭐, 그걸 꼭 그 자리서, 허풍이라고 까불기는 사람들이 왕왕 계신데...참 답답하다. Poetic Lisence라는 말도 모르나? 그런 분들 보통 다른 자리에서는 이 사람의 이야기를 마치 자기 이야긴 것 처럼 더 허풍을 치면서 떠들다가 사람들이 별로 재미있어 하지도 않아, 거기서도 혼자 삐쳐서 퉁퉁 혼자서 술마시다가 세상이 더럽다면서 점점 반사회성을 띄게 된다.  누군가 허풍을 치면, 일단, 재미있나를 보고, 재미있으면, 신나게 들으면 된다. 뭘  청문회까정 차리시겠다구..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종교행위와 경제생활, 아프리카의 여러 종족의 이야기들...은 이 책속에 무궁무진하게 소개된다.  하도 많아서 내가 일일이 옮기기는 어렵다. 좌우지간 무척 많다는 것만 이야기하고 하나만 내가 약간 탄복한 내용만 지적하고 넘어가자. 

나는 년전에 '다시 쓰는 맥주 이야기'라는 맥주의 기원과 관련하여 인류학/고고학 관련 책을 저술한 적이 있다.  그 책은 한국에서도 상당히 힛트쳤고, 미국 알리바마 대학의 인류학과에서 교과서로 채택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속에 미국의 시애틀 추장이 미국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 관해 언급한 바 있다. 지금의 유엔총회에서 읽어내려도 특A를 받을 정도로, 너무나 훌륭한 문장이어서 나는 그 문장이 후세의 유럽식 문학을 충실히 공부한 환경론자들이 만들어낸 위작일 것이라고 평한 바 있었는데, 이것은 나의 무식의 소치였다. 

미국 인디언 부족의 추장들은, 무력이나 재력을 가지고 부족을 통치하였던 것이 아니라, 연설을 통하여 감동을 주어서 그것으로 가지고 부족을 통할했고, 그래서, 인디언 부족들 추장들의 말솜씨는 가히 전세계 어느 시대 어느 정치인들보다 뛰어났었다고 한다. 난 그걸 몰랐는데, Graeber의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역시 이 친구는 내가 아는 것보다 몇배를 더 아는 친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라고 Graeber는 말하였다(라고 쓸려고 보니, 마지막 패러그래프는 아무래도...내가 쓴 것이 좀 심하게 드러난다. '마지막 패러그래프'만 빼고라고 수식을 달자.) 

이 번글은 좍 긁어 내려가려고 하니 오히려 좀 길어 졌다.  역시 글은 생각하고 써야한다. 생각을 하지 않고 쓰면 이렇게 된다. 

아래 Graeber의 사진만 하나 소개하자. 

얼마나 장난스럽게 생겼냐...이런 사람에게 기독교 이야기를 시켜보고 불교 이야기를 시켜보고 그러면 무척 재미날 것 같지 않냐?  원래 학문이란 건 그런거다...그럴 듯 하게 생긴 사람에게 그럴 듯한 이야기를 시켜보는 거다...그러면, 그걸 받아서 그럴 듯하게 푸는 재주가 있으면 그게 바로 큰 학자다.  그런 사람을 만나서 서로 (아니면 책을 통해서라도) 소통하는 것은 인생의 크나큰 즐거움이다. 

나 이 친구 곧 직접 만나볼려고 한다. 그리고, 한국에도 초청하여 강연도 좀 시켜볼려고 한다.  걸 기대!!!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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